퇴근 시간 10분 전 이미 퇴근 준비 완료했고 땡!하면 칼퇴근하려 부릉부릉 하는데 갑자기 보스님이 삼겹살을 사준다고 했다. 보스와의 겸상을 피하고 싶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그와의 자리는 어렵고 피곤하다. 게다가 이미 전날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었고 그 다음 날 점심에도 돼지부속물이 잔뜩 들어 있는 순댓국을 먹었는데 굳이 저녁에 삼겹살을 또 먹을 필요는 없지. 이따구 유혹 따윈 과감하게 패스해야지!! 음? 잉!!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즐겁게 삼겹살 굽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해버렸다.
어떻게 삼겹살의 유혹에 벗어 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공짜인대. 약간의 정신적인 피로도는 삼겹살과 그의 짝꿍 소주로 날리면 된다. 먹고 나면 체중증가와 숙취로 힘들겠지만 그건 내일의 걱정이고 오늘을 즐기면서 먹어야지.
돼지고기의 역사.
우리나라의 가장 고유의 대표 먹거리 삼겹살. 소고기, 닭고기를 제치고 1등한 돼지고기중 삼겹살은 명불허전이다. 최근 외국사람들도 한국의 대표 음식을 삼겹살로 뽑을 정도로 돌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호불호 중 불호가 없는 이 맛있는 삼겹살은 과거 오래전부터 먹기 시작했을것 같지만 의외로 1980년부터 구이용 삼겹살로 먹기 시작했다.
고대시대에는 육식을 즐겨먹었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하늘에 바치는 재물로 제사용 가축으로 매우 중요도가 높았다.
고구려로 와서는 '맥적'이라고 하여 돼지고기를 간장에 재워 숯불에 구워 먹었는데 이는 몽골의 유목민으로부터 영향받았다. 이후 불교가 도입되고 교리에 따라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섭취를 줄이게 되었다. 섭취량을 줄이니 도축방법이나 관련 조리 음식들이 발전하지 못했다.
몽골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는 석쇠에 구워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인 '설하멱'과 지금은 소주와 같은 증류수를 겉들여 마셨는데 이는 당시 중동을 점렴한 몽골이 그들의 음식에 영향을 받아 고려에 까지 전파돼 지금의 '너비아니'와 '소주'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외 꼬치로 고기를 꽂아서 불어 구워 먹는 방식도 몽골의 영향이라고 한다.
고려를 방문한 중국사신이 고려의 돼지고기 음식은 맛없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15세기 초 명나라 사신의 기록에도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고기와 양고기를 대접하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도 돼지를 사육하기는 했다. 이유는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서 그리고 왕실의 재래로 사육했으나 다른 가축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소는 여물을 먹고 식량 생산에 매우 지대한 역할을 했고 닭은 돼지에 비해 가성비가 좋았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래 돼지는 일반적알고 있는 핑크 돼지와 다르다. 체구도 작고 무게는 20-40kg 정도에 지방이 적을뿐 아니라 성장속도가 매우 더디어 식용으로 부적합했다. 게다가 주식도 사람이 먹는 것과 같아 돼지에게 사람이 먹는 것을 나눠 주기 어려웠다.
이럴 듯 인기 없던 돼지가 서양 서양문호 개방과 함께 여러 나라의 돼지를 받아 들여 토종돼지에서 지금의 개량된 빅 핑크 돼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돼지고기의 보급은 부족해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시골에서는 돼지고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삼겹살의 유래
1933년에서 동아일보에서 세겹살이라는 기사를 냈다. 세겹살은 돼지고기 중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고 하며 뱃바지 고기, 혹은 살과 지방이 세 번 겹친 고기의 의미인 삼층저육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1959년 해방 이후 경향신문에서 삼겹살이라고 처음 언급되었는데 그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여러 설중 하나인 개성지방에서 특별한 사료를 먹인 돼지고기에서 세 겹의 비계와 살이 적절하게 조합된 것을 삼겹살이라고 했는데 이는 인삼을 먹였기 때문에 그 이름 따와 삼겹살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비싼값에 고기를 팔기위한 상술이라고는 얘기도 있다.
본격적인 삼겹살 소비
1970년 중반부터 돼지고기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구이용 삼겹살이 아닌 수육과, 제육볶음이었다. 그 이유가 거세하지 않은 수퇘지에서 나는 냄새와 사람이 남은 밥이나 구정물 혹은 인분등을 먹이로 주다보니 특유의 돼지고기 잡내가 역해 음식으로 섭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각종 재료를 넣어 돼지의 잡내를 잡은 수육이나 양념이 강한 볶음 같은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일본으로 돈가스용 안심과 등심을 수출하면서 곡물사료 사용과 거세로 고기의 잡내를 없앴다. 그러나 돼지고기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었기에 족발, 내장, 머리, 뼈등이 남았다. 수출하지 못하고 남은 부속품을 버릴 수없어 탄생한 음식들이 바로 순댓국, 족발, 곱창이다.
1980년 경제성장과 산업화로 인해 급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소고기의 소비가 증가해 고깃값이 급등하며 소고기 파동까지 일어났다. 이를 대체하기위해 정부에서 돼지고기 먹기를 권장했고 비슷한 시기에 휴대용 버너 '부르스타가' 보급되면서 집이 아닌 야외에서도 구워 먹기 좋아 노동자들이 즐겨 먹으며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본격적으로 먹기시작한 유래는 많지만 그 중 강원도 탄광촌에서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먼지 제거가 된다고 삼겹살을 연탄불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 그 와 더불어 소주 곁들어 마시는 게 유행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먼지를 많이 마시면 돼지고기로 먼지 제거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여기서 나온 듯하다.
1997년 IMF로 삼겹살 문화가 더 본격화되었다. 회사회식에서 비싼 소고기보다 저렴한 삼겹살을 퇴근 후 부담 없이 즐기기에 적당 했다. 시대상에 잘 맞게 나온 것이 대패 삼겹살로 그것을 만든 사람이 백정원이다. 얇게 썰은 대패삼겹살양이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고 풍족하게 먹는 느낌에 한때 인기가 많았다. 그 후 여러 종류의 와인 삼겹, 녹차 삼겹, 별별 삼겹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렴의 상징이던 삼겹살이 결코 저렴하지 않게 되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며 삼겹살의 유래가 알고 싶어 찾아보다가 재미난 역사와 유래가 있어 포스팅해보았다.
한때 서민음식에서 지금은 세계적인 유명해진 삼겹살.
조마간 또 먹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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