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하면 신라면, 진라면, 열라면 등 엄청나게 다양한 라면이 있지만신라면이 출시한 이래 30년여 넘게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농심 신라면.그 신라면이 롯데 신라면이 될 뻔했었다.
이 번 포스팅은 먹거리 회사 농심의 역사와 신라면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초기 대표 주자 삼양라면.
농심 신라면을 알기 전에 우리나라 최초 라면부터 알아보자. 삼양라면은 1963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 삼양라면의 전중윤 회장이 꿀꿀이 죽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라면이 식량난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라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그가 일본 출장 중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끌고 있는 라면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마침 정부에서 5만 달러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라면 기계 두 대를 수입하게 되며 일본의 묘지식품회사에서 라면 기술을 배워 본격적인 라면 생산을 하기 시작한다.그러나 쌀만 주식으로 생각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업용 실처럼 생긴 구불구불한모양의 라면을 보고 잘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다 적극적인 홍보로 차츰 판매가 잘되면서삼양라면이 돋보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식량난 해소를 위해 밀가루 사용을 적극 권장시절이었으며 일례로 박정희가 직접 라면을 시식해 더 맵개 했으면 좋겠다는 시식평을 남기기도 했다.10원 부터 시작 하던 삼양 라면이 장기간 1위 자리를 지켰으나 1980년대 빙그레, 한국 야크루트 등 경쟁 업체들이 생겨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 했다.
1980년 중반부터 농심에서 출시한 라면들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1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농심이 아닌 롯데라면?
농심은 40년간 스낵과 라면으로 뚝심 있게 이어가는 기업으로 최근에도 매출이 2조 원 달하는 먹거리 대표기업이 되었다.농심 회장의 신춘호 회장은 롯데 회장의 신격호 회장 동생이다. 신격호 회장이 스무 살에 일본으로 가서 롯데를 설립하였고 롯데 껌으로 사업을 일궈 10년여 만에 큰 사업가가 되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한국 롯데 그룹을 운영했으나 신춘호 회장은 자기만의 사업을 위해 롯데를 나와 시계와 TV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1960년대는 시계와 티비같은 상품보단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정부에서도 경제개발 오개년을 선언하면서 쌀이 아닌 밀가루 음식이 들어간 분식류를 먹도록 적극 권장하던 시기였다. 신 춘호 회장도 롯데 일본의 직원의 조언에따라 라면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롯데공업회사를 세워 롯데라면을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삼양라면이라는 거대 공룡이 라면시장에 장악했기 때문에 판매가 매우 부진했으며 다양하게 판촉을 했지만 반짝 잘팔릴 뿐 여전히 롯데라면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라면 구현을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했으며 닭 육수에 의존하던 라면시장에서 소고기 육수를 개발한 라면을 출시 한다. 그리고 드디어 10% 미만이던 점유율이 25%를 차지하게 된다.
그 기반으로 새우깡, 감자깡, 양파깡 등등 현재까지 터줏대감으로 한 자리하는 스낵을 출시하면서 매출이 3.5배로 늘어나기 시작해 그 기반으로 본격적인 라면 기술에 더 투자를 하게 된다.
동생이 잘된 것이 배가 아팠을까?
롯데 회장 신격호 회장이 동생이 롯데 이름으로 라면을 판매하는 것에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신춘호 회장이 1978년 '농부의 마음으로 우직하게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의미로 '농심'으로 상호를 바꾼다. 그리고 롯데 그룹과 농심그룹의 회장들은 의절하게 된다.
부동의 1위 신라면
1980년대 공업용 동물 기름으로 면을 튀긴 우지파동으로 사람들은 라면에 대한 강한 불신이 생겨 라면 판매가 저조했다. 그러나 농심은 설비에 더 투자한 과감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양질의 라면을 생산하게 되면서 안성탕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대거 유명 라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삼양 라면의 1위 자리를 1985년 농심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1986년 농심의 역작 신라면을 출시한다.
항상 라면에 대한 개발을 멈추지 않던 신춘호 회장은 매운 고추를 생각했고 매운 신, 그의 성을 딴 신으로 제품을 출시한 것이 신라면이다. 신라면은 출시이래 현재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전세계 마트에 신라면 항시 진열되고 있다.
1990 중반 IMF가 왔어도 되려 1조 매출을 돌파했으며 대형마트의 갑질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굴지의 대기업인 신격호 회장와의 손절에도 이겨나가며 지금과 같은 농심 신라면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부동이 신라면도 하락세인지 1위에서
자연스럽게 짜파게티,
그러나 역시 라면은 신라면,
매운 강도를 확인할 때도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말하면 '아~그 정도 맵기' 하고 맵기의 기준이 되버렸다.
우연히 신라면이 출시한 농심 역사를 접하게 되어 재미있게 포스팅 했다.
최근 신라면이 질려 진라면으로 갈아타긴 했지만 가끔 너구리를 먹기도 한다.
그리고 소주엔 새우깡이 국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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