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공화국?!
생소한 나라일 것이다.
지구상에는 195개가 있고 최근에 넷플릭스 통해 알게 된 나라 '수리남'도 처음 듣듯이 나오루 공화국이란 나라도 존재한다. 10년 전 서프라이즈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페루의 새똥 전쟁을 보고 새똥으로 한때 부유했던 나우루공화국이 퍼뜩 떠올라 작성하게 됐다.
국가 면적과 위치 : 우리나라의 용산구 면적이고 울릉도의 1/3, 전 세계 바티칸, 모나코 다음으로 세 번째로 작은 섬나라로 호주에서 3260km 떨어진 21km2 면적이다.
인구 : 2021년 기준 만 명 조금 넘음.
역사 : 1798년 유럽인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어업과 농업으로 평화롭게 원주민들 살고 있었다. 그러다 30-40년 동안 서구의 무기와 술이 전파되면서 파면을 길로 접어들게 된다. 10년간 씨족 간의 전쟁이 발발했고 독일 무역상에 의해 보호란 명명하에 1914년 독일 식민지가 된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일본의 점령을 받았고 전쟁이 끝나고 바로 호주에 귀속되었다.
점령을 당하는 동안 외지인들이 나오루 땅에 있는 인강석에 환호 하는 것을 보고 10년여 동안 호주에서 투쟁해 1968년 나오루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 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넘겨받게 된다.
나우루 공화국이 벼락부자가 된 이유와 전성기.
나우루는 산호초와 새들의 천국으로 알바트로스 응아를 오랫동안 퇴적해 이루어진 구아노(동물의 똥), 인광석으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인광석이랑 인회석을 함유하는 퇴적암으로 화학적으로 '인'이 함유되어 비료원료로 사용되며 인산제조, 의약품, 반도체, 세라믹, 실크, 섬유, 방충제, 폭약등에 사용된다. 참고로 북한 함경남도와 평안남도에 인광석은 아니지만 인회석이 세계적인 규모로 매장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인함량이 20% 이하라 경쟁력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광물이니 잠재된 개발은 희망적이다.
19세기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발전하고 공장이 설립되면서 대량생산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구증가로 식량난이 문제가 됐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때 필요한 양질의 비료가 바로 인강석이었다. 돈이 있어도 못 살 정도로 희귀한 광물이었다.
그런 노다지 같은 인광석의 주인인 나우루공화국은 1970~1980년은 황금기였다.
연간 1억에서 12천만 달러 (환율 1달러 1200원 기준 돈으로 환산하면 1200억~1400억) 수익을 내며 최대 부자나라로 등극했다. 1980년대 나우루 1인당 GDP는 2만 달러가 넘었으며 미국은 13천 달러, 일본은 만 달 이하, 우리나라 $1700달러였던 시대였다.
1970년 나우루 인구는 7700명 정도였다.
돈이 넘쳐나니 정부에서 국민에게 매우 후하게 평등하게 복지혜택을 주었다.
인구도 적으니 그 혜택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
- 일 안 하고 놀고먹기
- 모든 세금 없음
- 일 년에 한 번 당시 돈으로 생활비 일억 지급
- 한 가구당 가정부 지원
- 결혼하면 주택 지원
- 전면 교육 무상 - 유학 가고 싶으면 유학비 전액 지원
- 의료비 지원 - 외국에서 수술받아야 할 경우 전액 지원, 가족들 주거비 지원
작은 섬나라이지만 나우루 주민들은 바로 앞에 있는 마트도 차를 타고 다녔다. 가다가 기름이 없어지면 차를 버리고 새로 차를 사기도 했다. 버려진 차종은 대부분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비싼 외제차들이었다. 개인 경비행기를 타고 한 끼 식사를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의 나라에 가고 하와이와 싱가포르등에 가서 쇼핑을 즐기는 사치스러운 나날을 일삼았다. 전 국민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무원이 하는 일, 인광석을 채굴하는 것도 모든 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했다. 주로 중국인 근로자가 많았는데 관광지로 유명한 나라가 아님에도 나오루에는 차이나 레스토랑이 인기가 많은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내리막 길
영원할 것만 갔던 황금기가 1990년대 접어들어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문분별한 채굴로 인광석의 채굴량이 1/10으로 줄어들었다. 만일 이때 위기감을 포착했다면 여전히 잘 사는 나라로 유지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미 20년 여 넘게 호화롭게 놀고먹기만 했던 터라 위기감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채굴하기 위해 섬의 80%를 파헤치기 시작했지만 자원은 이미 고갈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지한 정부에서 채굴량을 줄이고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바닷가에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했지만 노는 것에 익숙한 국민들은 일을 할 줄도 몰랐다. 거의 모든 국토를 파헤쳤기 때문에 농업은 생각도 못하고 독자적인 생산이 할 수없어 모든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했다. 정부의 부정부패도 한몫했다. 그 많던 잠금운용을 방만하게 하고 해외부동산에 투자는 했지만 호갱님으로 등극하며 줄줄이 실패했다. 그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엄청난 돈으로 한때 해외 유명휴양지에 빌딩을 사 임대사업도 하고 부동산은 시간이 흐르면 현시세 맞게 올라가니 그것들을 담보로 은행에 자금 융통을 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줄 돈으로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라 돈을 빨리 벌기 위해 검은돈을 손에 대기 시작했다. 스위스 은행과 같이 흉내 내면서 마피아나 테러리스트의 조세피난처 및 돈세탁을 해줬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가 발생한다. 미국은 대노하였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우루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다. 순삭간에 모든 돈을 인출하는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100% 광석 수출과 100% 수입을 의존하던 나우루 국민은 한순락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 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호주에 빌붙기도 하고 난민을 수용해 자금을 마련했지만 그들와의 트러블과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인 없는 국민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암흑 같은 날이지만 역시 시간이 해결해 주긴 했다. 다시 국가 정비하고 은행을 되찾고 일할 줄 몰랐던 국민들은 일을 다시 시작하고 한 때 폭동을 일쌈던 난민들도 나우루 생활에 적응하며 2000년 $2500에서 떨여졌던 1인당 GDP가 2021년 기준 1인당 $10,000로 성장하게 됐다. 그래도 나라가 폭망 하지 않고 다시 회사회생하는 이유를 보니 인구가 적은 것이 한몫한 듯하다.
상황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하루에 4시간만 전기 사용이 가능하며 휘발유 공급이 어려워 차들은 여기저기 폐차로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마구잡이 채굴로 국토가 낮아져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높아진 해수면으로 나우루 공화국은 없어질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오늘의 교육 - 과유불급, 흥청망청은 망국의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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