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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회

[칼라의 역사] 매혹적인 죽음의 초록 드레스

by 고흐따라쟁이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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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푸릇푸릇한 초록의 봄이 온다.
초록은 새 생명, 힐링, 평화, 낙원, 긍정의 의미로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반대로 독약, 마녀, 해로움을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외계인과 악당들이 녹색 피부이거나 마녀가 독을 제조할 때 녹색용액인 것을 보면 극과 극을 나타낸다.

12세기 십자군전쟁 때 무슬림과 기독교는 적대관계였다. 특히 서구 사회는 무슬림의 상징인 초록색을 악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세의 그림을 보면 녹색 찾기 힘들 이유 이기도 하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초록색을 광물에서 추출해 사용했지만 유지기간이 짧아 누렇게 변색되곤 했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순수함을 추구하던 시대라 두 가지 색을 혼합한 색을 금기시하며 혼색한 그림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천박한 그림이라고 했었다.

다른 방법으로 초록을 구하기 위해 녹쓴 구리에서 녹색을 추출해 와인과 썩어 청록색을 만들었으나 색이 만족스럽지 않고 발색도 좋지 않아 완벽한 녹색을 구현하지 못했다.

1775년 스웨던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녹색화합물을 개발한 논문을 내게 된다. 그토록 갈망하던 녹색이 혜성처럼 나타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 이 신비한 녹색을 '셸레그린'이라 칭했다.

구하기 어려웠던 녹색은 손쉽게 구해 의복, 액세서리, 벽지, 가구, 건물, 양초, 심지어 음식까지 모든 생필품에 Green으로 도배했다. 심지어 푸릇한 녹색으로 벽지를 발랐더니 집안에 쥐나 벌레가 없어지는 신기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육안으로도 즐겁고 집에 있는 기생충과 벌레를 없애주니 일석이조였다. 하다못해 궁정에서부터 작은 오두막까지 모두 초록일색이었다. 수백 톤에 달하는 녹색 안료를 영국에서 신나게 생산하게 되었다.

1855년 선명한 에메랄드그린 드레스 입은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를 필두로 1863년 프랑스의 외제니 황후가 오페라에 쨍한 초록색 입고 나타나 패션에 민감한 귀부인들에게 아이콘이 되었다. 프랑스파리에서 초록이 유행하니 영국도 패션리더인 프랑스를 따라 유행하게 된다.

 

green dress
형광분석기로 테스트해 비소가 검출된 드레스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들이 발생한다. 그것도 갓난아이나 어린아이들이 주로 의문사를 당하는데 방에서 잘 놀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고 잘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픽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었다. 죽음의 원인을 찾아보니 최신식으로 꾸민 초록방과 초록의복, 초록액세서리등 셸레그린을 사용한 환경과 물건에서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사망자가 나오기 전부터 녹색옷을 입거나 식기구등을 사용하면 피부에 수포가 일고 짓무르며 구역질, 몸살과 같은 병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1861년 11월 영국에서 19살 마틸다 슈오러가 사망한다. 그녀는 조화를 만드는 노동자로 인조 잎사귀에 초록색을 입히는 작업을 했었다. 파우더 염료를 더 곱게 만들어 초록색이 더 선명해지는 작업은 한 그녀는 파우더를 만진손으로 얼굴과 머리 그리고 음식 등을 손대며 직간접적으로 파우더 가루를 마셨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시름시름 앓았고 18개월 후 눈과 손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녹색물을 토하며 사망하기 직전까지 몇 분간격으로 경련 일으켰다. 눈, 코, 입에서 거품을 뿜어내며 세상이 온통 초록색이라는 말을 남기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부검결과, 그녀의 내장, 간, 폐까지 비소가 검출되었다.

순수한 비소는 지구에 널리 존재하는 천연원소로 우리 실생활에서 반도체, 농약, 살충제, 방부제, 의약품의 원료 (매독의 치료약)로 쓰이지만 비소가 산소와 접촉하면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로 변한다. 비소를 연구한 셸레가 이 부분을 간과할리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명한 화학자인 셸레가 본인의 명성과 업적을 위해 비소 부분을 함구해 논문으로 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쨍한 초록의 창시자도 44세 나이로 독에 의해 사망했다.

귀족회원들로 구성된 '숙녀 위생협회'에서 초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마틸다가 일했던 작업장을 방문해 작업환경을 확인하게 된다. 100여 명 직원들이 비소 파우더가 날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염증으로 뒤덮인 얼굴과 손을 보고 독성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게 된다. 협회는 화학자인 A.W 호프만에게 머리 장식에 달란 초록색 조화를 검사해 줄 것을 의뢰했고 호프만은 다량의 비소가 검출된 결과를 타임지에 투고하게 되며 세상에 알리게 된다.

 

짓부른 손
인조장식을 만들기 위해 초록 안료 파우더 만진 후 생긴 염증과 상처


의복을 만드는 염색공에게도 비소로 인한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안료를 만지는 손으로 소변볼 때 음낭을 만지면 그 부위에 염증을 일으켜 마치 매독과 같은 고통이 생겼다고 한다. 병을 고치려면 최소 6주 동안 입원을 해야 했고 그 외 두통, 빈혈, 복통, 설사등은 지속적으로 달고 살았다.

1815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영국에 패배하고 세인트 헬레나섬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색인 초록으로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를 했는데 의문스럽게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나폴레옹의 병명은 위암이었지만 사후 그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비소가 검출 돼었다.

영국의 의학 저널에서는 녹색 옷을 입은 여성을 보고 죽이는(빅토리아 시대 은어로 매혹적인 이라는 의미) 팜므파탈이라고 비꼬는 기사를 내기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초록색의 유행은 줄어들 기세가 없었다. 여전히 부유층에서는 자신을 과시하며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게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초록을 고집했다.
의복뿐만 아니락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 마네, 모네, 고흐도 초록색을 사용했으며 모네의 실명과 고흐의 죽음에도 비소의 영향 있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 정부와 독일정부는 녹색 안료 사용을 자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워낙 대유행으로 그런 사소한(?) 부분은 가볍게 무시 돼버렸다. 영국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여러 사망사고로 위험한 색임을 알고 있음에도 셸리그린을 비롯한 에메랄드그린, 패리스 그린은 바로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다가 1960년 법적으로 사용금지를 하면서 셀레그린은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합성염료로 안전한 녹색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초록을 비롯한 위험한 칼라로 목숨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걸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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