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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회

추상화의 시작과 작품 값이 비싸게 된 계기의 재판.

by 고흐따라쟁이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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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미술을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를 못하고 있어서 중간쯤 그린 그림들이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초기 블로그의 주목적이 앱테크와 미술 관련 내용이었는데 점차 변질되면서 등산과 일상생활로 위주로 작성하다 보니 초심을 잃은 듯하다.  초심을 뒤찾고 그리다 만 그림도 다시 시작하고 손 놓고 있던 작가소개도 하려 한다.
 
사실 일반인이 이해 못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추상화와 설치 미술이다. 특히 설치미술 중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난해한 것들을 이것저것 놓고 대단한 해석력으로 멋지게 포장한다. 그리고 가격은 비싸게 책정한 후 마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를 한다. 
 
 

마르셀 뒤샹의  '샘'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샘'이란 작품이 있다. 마르셀 뒤샹 (1887-1968년)의 작품으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다. 샘은 남자의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관습적인 미술 형태를 작가가  전하고자 한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뉴욕독립협회 전시에 이 변기를 출품했지만 너무나 파격적이라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지금은  현대미술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었다. 변기 '샘'을 통해 그동안 정형화된  캔버스와 물감만을 이용해 그림을 만드는 형태가 아닌 이미 만들어진 ' ready- made' 물건에서 예술성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이 미술사적으로 대단한 가치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뒤샹도 자신의 생각을 물건에 투영하기 전 이미 추상화가 꿈틀 되던 시절이었다.
 

 

 
작가의 생각으로 작품을 표현하게 된 추상화.

알수없는 그들의 정신세계의 표현인 추상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최근 우리나라 미술 경매품 중  10위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작품이 모두 추상이다.  정성을 들여 그린 알 수 없는 추상이 있는 반면  선과 점 몇 개 그려 성의 없게 보이는 그림도 값비싼 가격으로 경매되고 있다.
 
현대미술 전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초상화등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있었다. 그림의 작품성 보단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선호하다 19세기 접어들면서 인상파 화가로 인해 차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뜰리에가 아닌 밖에서 실사를 보고 그리며 점차 보수적이었던 형체가 추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발달되면서 실사화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작가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본격화된  추상미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추상화를 알려지게 해 준 재판

1878년  11월 영국 웨스턴민스터의 한 법정에서 당대 최고의 미술비평가이자 사회경제학자인 러스킨 (1819~1900)과 미국 유명 화가인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1834~1903) 간의  법정 싸움이 세간의 관심사였다.  영국작가도 아니고  미국 작가가 영국에서 저명한 비평가와 거금의 재판 비용이 드는 이 팽팽한 날 센 공방전을 왜 했는지 알아보자. 
 
 

<검정과 금빛 야상곡 : 차락하는 불꽃> 1874년 제임스 맥닐 휘슬러작품

 
러스킨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로 그의 비평에 따라 화가의 가치가 높아지거나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엄청난 입김의 소유자였다. 1877년 러스킨은 전시장에 걸려있는  휘슬러의 작품 <검정과 금빛 야상곡: 추락하는 불꽃>을 보고 
형체도 없고 구도도 없는 검정으로 뒤덮은 어린아이가 장난치다가 만 그림이라고 하며 혹평을 했다. 그가 더 혹평을 한 이유는 막 그린 그림에 그럴듯하게 제목을 지어놓고 작품인양 걸려있는 것을 보고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60.3 X 46.6CM에 불과한 사이즈에 작품 값이  200기니 (현재 가치로 1만5000파운드, 약 2400만 원) 책정한 것에 가치도 없는 그림을 거액을 요구했다고 하며 사기꾼이라고 했다.
 
'정통성있는 예술 무시하는 행동이며  한 어릿광대가 대중들의 얼굴에 물감 한 바가지를 퍼부어 놓고 200 기니를 요구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I have seen, and heard, much of Cockney impudence before now; but never expected to hear a coxcomb ask two hundred guineas for flinging a pot of paint in the public’s face)”라고 했다.
 
이런 혹평을 들은 휘슬러는 자신을 모욕했다며 명예훼손으로 러스킨을 고소했다. 휘슬러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인성의 소유자로  나름 미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화가였다.
 
재판 중 러스킨이 물었다. “그림을 이틀 걸려서 완성했다고 하는데 이틀 동안 작업한 대가로 200기니가  된다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작가들은 휘슬러가 완성한 그림의 몇 배의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 뿐 아니라 작품 값도 휘슬러가 제시한 금액의  절반도 못 미치기 때문에  200기니는  거품이란 뜻이었다.
 
휘슬러는 “자신이 이제까지 배워온 모든 경험에서 나온 지식으로 값을 책정한 것이며 사물을 알아볼 수 없게 표현 한 것은  외부 세계와 관련한 어떠한 요소도 배제한 선, 형태, 색채의 배합이다'라고 반박했다. 
 
 

재판의 결과

결과는 예상을 뒤업고 휘슬러가 승소했다.  그러나 휘슬러가 받은 손해배상금은  1 파딩(현재 가치 7펜스, 110원)이었다. 판사는 막대한 소송비용을 반반 부담하게 했다.  휘슬러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대저택과 그림을 모두 팔았지만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됐다. 러스킨 또한 저명한 비평가에서 꼰대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명예로운 옥스퍼드 대학의 슬레이드 특별 교수직 사임하고 신경쇠약으로 모든 공직에서 하차했다고 한다. 결국 그 재판으로 인해 두 사람을 모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여기서 얻은 교훈, 비평은 함부로 하지 말고, 화난다고 막 고소하지 말자.
 
 
지금은 휘슬러의 작품보다 더 난해한 추상이 많아 그의 작품은 일반 회화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변색되어 버린 추상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의견과 생각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대중의 이해도 같이 공존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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