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기괴하고 엽기적이고 환상적인 그림 한 점을 봤다. 어디서 본 듯하지만 본 적이 없는 낯선 그림이었다. 언제나 세기 말이나 종말론이 있을때 사람의 마음이 혼란 스럽다.
괴로울 때 대작이 많이 나온 이유가 그것일까?
호기심이 생겨 그 그림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작성하겠다.
기괴하고 엽기적인 수수께끼 같은 그림.
구로 된 그림이 있다.
그안에는 땅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처럼 보이기도 한 형태가 있지만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가 없다.그리고 그림 상단에는 '그가 말하고 만들어졌다.그가 명령하고 창조되었다' 라는 성경 시편의 글귀가 천지창조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좌우가 접힌 3단 제대화이고 양쪽을 펼치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온다.
왼쪽 220x97.5cm, 중앙 220x195cm, 오른쪽 220x97.5cm
추정 년도 1490~1510 사이.
그림을 펼치면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띄나 자세히 보기 시작하면 굉장히 불쾌감이 들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하며 불편함을 주는 장면들의 연속과 디테일한 묘사까지. 보는 내내 인상을 찌부리게 만든다. 한편으로 이야기같은 구성이 있다. 처음 시작이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를 암시하는 내용이 알고리즘처럼 이어진다.
불쾌하지만 묘한 끌림이 있고 권선징악이 보이는 이 놀라운 그림은 16세기 화가가 그려 더 놀랍다. 그 이유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상상을 뛰어넘는 SF 같은 외계 생물체들 비현실적으로 매우 독특하게 표현한 초현실적인 그림이기 때문이다. 현대 초현실주위는 20세기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을 통해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세시대 말에 현대 그림 못지않게 저런 상상력으로 그렸다는 것은 그가 천재 변태 화가임을 증명한다.
기이한 그림의 작가는 네덜란드의 화가인 히에로니니무스 보스이다.
작품명은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이라고 되어있지만 후대 사람들이 지은 제목이다.
보스는 그림에 제목을 남기지 않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중세 말을 걸쳐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화가로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대략적으로 예측하는 건 출생연도와 가족, 그리고 성모님의 형제애 회원이라는 지위 정도만 간략히 남아있다. 1516년 여름 콜레라로 보스가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고 아직까지도 미스터리 한 작가로 남아있다. 그 시대는 작품명과 작가의 sign을 하지 않던 시대로 보스의 그림이라고 인정된 것은 25점 뿐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은 후대의 사람에 의해 해석되고 그림의 내용으로 보고 작품명이 지어진 게 된 것이다. 그가 진정 무엇을 제시하고 암시하고자 했는지는 정황상 이랬을 것이다라는 해석들 뿐이다.
보스의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된다.
동시대의 거장 얀 반 에이크는 한 번쯤 들어봤어도 히무로니무스 보스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그의 작품이 근현대 미술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모든 대가들은 그런 듯 작가 사후에 인정받고 가치를 인정받는다.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살던 시대.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들어가기 전의 15세기 유럽 시대 상황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1500년에 유럽 자체가 재앙에 가까운 천재지변과 질병으로 종말론이 대유행하던 시절이었고 이탈리아 에서는 종말이 가까웠음을 나타내는 최후의 심판 그림이 유행하던 때였다.
1) 15세기 초. 북유럽 지진 및 홍수로 인한 피해로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이 많이 죽었다. 대기근이 시달리고 먹을 것이 없으니 인육까지 먹었다는 설이 있다.
2) 15세기 말 흑사병으로 유럽의 인구의 1/5 가량이 몰살당했다. 일반인을 비롯한 성직자 죽었고 그 자리를 대신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돈을 주고 성직자 자리를 차지하며 부정부패가 난무했다. 이는 후에 종교개혁의 시초가 된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타락한 성직자의 에피소드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야말로 당장 세상이 망해도 이상하지 않는 시기였다.
3) 암울한 세상에 살다 보니 종말론으로 인한 금욕주의와 방탕주의 문화가 생겼다.
서유럽 국가에 비해 북유럽의 내세관이 달라 인간의 몸을 미화한 것보다 실질적인 메시지를 주는 그림을 더 선호했다. 게다가 상류층 사람은 무료한 삶에 엽기적이고 가학적인 그림을 선호해 자극적인 그림을 즐겨 찾았다. 탈출구가 필요했던 사람들은 종교에 더 심취한 반면 더 방탕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 방탕함에 걸작들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약간은 생소한 작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그 당시 시대상에 대한 내용이다.
두번째는 그의 대표작인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 대한 작품을 게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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