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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잡지식

최악의 발암 고종,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며느리로 들인 이유는? (첫번째)

by 고흐따라쟁이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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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추정 사진
이 사진이 명성황후 사진으로 추정이지 명성황후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 명성황후는 자신과 적대시 하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조선왕조에 대해 야화라기는 그렇고 역사 같은 내용보단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골치 아픈 역사는 피하고 재미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야화로 소재를 찾다보니 최악의 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악의 왕은 여럿있었는데 그 중 나라를 망국으로 가게 만든 부부가 있었다.

친구에게 '니가 생각하는 최악의 왕이 누구냐?'라고 물었더니 친구 왈 '광해군? 연산군?' 폐위당한 왕들이니 당연히 나쁘다고 생각한 듯하다. 다시 친구에게 질문하길 고종은 어떠냐?라고 다시 물으니 '불쌍하잖아. 일본한테 당하고 와이프 살해당하고 불쌍해'. 뭬야? 대체 뭐가 불쌍한데.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 누구 인대.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대!
친구가 마치 도른자 보는 듯이 쳐다본다.
친구야 고맙다. 너로 인해 쓸 내용이 생겼다.

역사는 옛날 얘기처럼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조선시대 최악의 왕으로 포스팅하는 날이 오다니. 본래 역사는 민감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요,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쓰고자 한다.

 

고종의 와이프, 민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영화와 방송에서 미화시킨 명성황후를 국뽕으로 유도한 것이 황당했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더 가관이더라. 아마도 포스팅은 3부작 가야 할 것 같다. 명성황후의 실체와 민씨 일가의 만행을 시작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고종까지. 욕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을미사변으로 그간의 민비의 악행은 조용히 무마되고 일본의 만행에 항거하는 애국 열사가 된 명성황후. 명성황후란 칭호는 나중에 고종이 대한제국으로국호를 바꾸며 황후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 얘기는 그 전이므로 민비로 작성하겠다.

드라마에서 이미연 언니가 맡은 민비역은 마치 일본군과 대항하듯이 '조선의 국모다' 라고 말하고 일본의 칼에 의해 살해 당했다. 그 장면을 보던 시청자는 아니 저리 곱고 훌륭하신 우리 국모가 일본에 총칼에 무참히 당하다니..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 본래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세탁해줬다. 그뿐이랴. 뮤지컬 명성황후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이미지 세탁용으로 공연되고 있다.


그런 훌륭한 분과 그녀의 남편인 고종이 재위하던 조선말 민란과 봉기는 난무했고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전쟁은 일어났다. 왜일까? 심지어 고종은 와이프를 잃었는데 그에 대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슬픈 와중에서 로맨스를 싹 틔우며 딸 덕혜옹주를 낳았다.

 

역대 조선 왕 중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왕들.

역대 조선 왕 중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한 왕은 선조 혹은 연산군, 인조. 고종이다.
선조가 재위 시절 인재가 넘쳐났다. 이황, 이이, 그리고 그 유명한 이 순신 장군 등용으로 임진왜란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여줬으며 그의 아들인 광해군도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하지 못했던 리더십을 보여줘 민심의 환심을 샀다. 무능력하지만 인재를 볼 줄 알던 선조. 어쨌든 인재들이 선조의 무능을 대신 채워 주었다.

광해군과 연산군은 초반에는 준비된 왕이었다. 그러나 왕위 계승 정통성에서 결국 정치적으로 밀려 용두에서 뱀의 꼬리 보단 못한 군주로 낙인찍힌다. 최악의 군주인 인조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다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사실상 인조나 고종이나 둘 중 누가 더 최악이냐라고 한다면 비둥비둥해서 선택하기 힘들다. 웃긴 것이 인종과 고종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흥선군의 둘째 아들 이명복은 당시 왕이었던 철종이 자식 없이 일찍 죽자 흥선군과 대비 조 씨의 지지로 조선 익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익성군'의 군호를 받고 곧바로 조선 26대 임금으로 정식 즉위하였다. 고종은 본래 영조와 사도세자의 후손이 아닌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8대손이었다. 역대 최악의 왕의 후손이 나라를 망국으로 가게 한 후손을 낳았다.

 

민비가 흥선대원군의 며느리가 된 배경

흥선 대원군은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으며 마침내 고종이 12세 되던 해에 조선 임금이 되었다. 그리고 15세 되던 해 16세의 여흥 민씨 가문의 민 자영을 들이게 되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당시 대비 조씨와 실세인 흥선대원군은 세도가인 안동 김씨와 양반의 강한 세력에 그나마 약해보이는 민씨를 외척으로 점찍었다. 이유는 흥선대원군의 어머니, 와이프가 모두 여흥 민씨였으며 조력자로서 매우 탄탄했으니경험상 여흥 민씨를 들으면 무탈할 줄 알고 민 자영을 며느리로 들인 것이다. 심지어 순종의 와이프도 여흥 민씨이다. 4대가 모두 민씨 집안이다.

썰이긴 하지만 3대에 걸쳐 와이프 쪽 집안이 같다 보니 유전학적으로 문제가 생겨 민비가 출산한 아기들이 모두 죽고 그나마 살아 남아 왕위를 계승한 순종이 몸이 허약하고 정신적으로 약간 모자랐다는얘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 처음 포스팅을 하겠다고 생각했을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역사적인 사건이 많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2편 민비의 실체 위주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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